정본 해동검도를 펴내며
1961년 8월, 까까머리 소년인 나는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관악산 천인암에 도착하였습니다. 천인암은 조그마한 암자로 관악산 중심부에 위치하여 태양이 일찍 뜨고 일찍 졌습니다. 바로 그곳에서 운명적으로 고구려의 사무랑을 이어오신 장백산 스승님을 만났으며, 스승님으로부터 검(劍) 수련법을 전수받기 시작하였습니다. 그후 학생이었던 나는 여름방학과 겨울방학이면 꼭 관악산 천인암으로 달려와 암자에 기거하며 스승님으로부터 검을 전수받을 수 있었습니다.
1972년 장백산 스승님은 고별을 뜻하시며 “너의 검을 넓은 세상에 알려 악으로부터 선을 지키는 사무랑이 되어라” 당부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받들어 1982년 경기도 안양에 처음으로 해동검도 도장을 개관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우리 전통무예를 표방하는 무도들이 많이 있었지만, 열악한 환경으로 전통의 맥이 끊겨야만 하는 안타까운 시절이었습니다.
그러나 해동검도는 뜻있는 분들의 사랑을 받으며 이른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도장의 불이 꺼지지 않았습니다. 삶의 질과 자아의식이 점차 높아짐에 따라 선조의 숨결을 느끼는 역사의식 속에서 최강 고구려 검을 재현한다는 자부심 속에 해동검의 여명은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1989년 MBC 문화방송에서 개최한 해동검도와 대한검도(kendo)의 대결에서 대한검도측의 기권은 해동검도의 위상과 우월성을 다시 한번 국민들에게 각인시켜 주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후, 해동검도는 도장 및 학교, 직장 동아리 등의 활동으로 전국적으로 활발하게 보급되었습니다. 해동검도 수련생들은 전국의 많은 시,도 축제 등의 행사에 참여하여 국민들과 함께 호흡하며 명실공히 국민생활체육으로 확고히 자리매김하였습니다. 곧 해동검도는 국민 모두의 무도라는 인식을 심어주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일부 회원들은 이러한 인기를 등에 업고 원류단체인 대한해동검도협회를 이탈, 분파를 일으키는 안타까운 일을 행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의 해동검도(Only One Haidong Gumdo)’ 를 위한 지칠 줄 모르는 행보는 전 세계 50여 개국 2,500여 해동검도 도장에서 약 150만 명의 회원을 탄생시켰습니다. 그리고 아시아협회, 유럽협회, 팬암협회, 오세아니아협회, 아프리카협회, 중동협회가 창설되어 팬암대회, 유럽대회, 세계대회 등 각종 국제대회가 성황리에 치러지고 있습니다.
“해동검도는 고구려의 설봉선인이 백두산 삼지연에 학문과 무예를 수련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도장을 설립하여 청,장년들에게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忠), 부모님께 효도하는 마음(孝), 어른을 공경하는 마음(禮), 바르게 행동하는 마음(義)를 사문의 이념으로 삼아 무도를 가르친 것을 그 효시로 보고 있다. 그중 공을 세운 무사들을 사무랑이라 칭송하고 존경하였으며, 이들 사무랑은 악으로부터 선을 보호하기 위하여 앞장서 왔다.”
(문화체육관광부 국민생활체육협의회, <스포츠백과> 해동검도 개요, 2008)
위 설명처럼 최강 고구려의 무도인 해동검도의 화려한 부활의 역사는 천년의 시공을 넘어 전 세계, 전 인류를 향하여 찬란한 검광(劍光)을 발산하는 광명검의 역사입니다. 해동검도는 세계인의 몸과 마음을 하나로 묶는 평화의 검으로 인류발전과 평화에 이바지할 것이며, 그 주인공은 바로 여러분들이 될 것입니다.
끝으로 이 책이 발간되기까지 해동검도에 대해 아낌없는 사랑을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 드리며, 전 세계 해동검도 회원들과 지도자들께 오늘의 이 영광을 바칩니다.
2009년 5월 4일
사단법인 세계해동검도연맹
총 재 김 정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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