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족(蛇足)
뱀한테 발이 있을 리가 없다. 그런데도 뱀을 그리고 나서 발을 그리는 사람들이 간혹 있다. 지금 이 책의 경우가 그렇다. 읽고 나서도 잘 모르겠으니 전체를 바르집는 한 마디를 두면 좋겠다는 의견이 있어서다. 이 책은 배달민족의 뿌리를 더듬어낸 우리들의 태 집 소식에서 강보에 싸여 젖을 먹고 걸음 발을 타던 유년시절 이야기이다. 그리고 율려에 관한 이야기다. 아니 율려의 가락을 타고 출렁거리면서 여기까지 밀려온 우리들의 상고시절 이야기다. 아직 문자가 없던 어둠의 시대여서 혈거(穴居)로 지내던 여러 만 년의 소식을 알 수가 없고, 더러는 인신(人身)을 희생으로 삼아서 천지신명의 비위를 맞추었을 시절의 제사내용도 짐작을 할 수가 없다. 불을 발견한 후 문명이 시작되기는 했지만 저 석기시대의 살림이 어떠했는지 그리고 초기 원시문명의 생활이 어떠했으며 그 적 사람들이 우주를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였는지 여전히 캄캄하기로는 매일반이다. 그러다가 문명의 새벽이 오고 어슴푸레하게 밝아지는 여명을 따라서 사람의 자취가 드문드문 드러나기 시작하니 이른바 신화의 시기다. 부도지가 전하는 신화는 우리 배달민족의 첫 살림터가 파미르고원이었다고 한다. 땅에서 솟는 지유를 마시고 살다가 오미(五味)의 재앙을 만나 동서남북으로 뿔뿔이 흩어지기로 드는데 우리의 조상인 황궁씨는 하필 북풍의 칼바람이 모질게 닿는 천산으로 방향을 잡는다. 부족들의 맏형자격으로써 오미의 재앙에 책임을 통감하고 수계재불(修戒齋祓)의 완성을 위해 수행조건이 가장 열악한 북녘 풍토를 찾아든 것이다. 파밀고원을 떠나서 천산산맥을 지나 알타이산맥을 밟고 바이칼에 닿으니 그 때가 환인천제들의 시기다. 딱히 증명할 수는 없지만 뒤에 오는 여러 조건이나 조짐으로 보아서 바이칼 시절에 이미 볼만한 문명살림을 일으켰던 것은 말 할 수가 있다. 지금 흥안령산맥에 흩어져서 사는 소수민족들, 이를테면 몽고족 만주족 허절족 시바족 오르쪽족 어원커족 다굴족들은 하나 같이 자기들의 조상을 퍼르컨으로 말한다. 퍼르컨은 곧 바르칸 ─밝한─바이칼에서 변형된 이름이다. 퍼르컨이 세상을 창조했고 사람살림을 마련했다는 것이다. 오늘 인류문화사에서 말하는 이들 일곱 민족은 모두 바이칼에서 살다가 떠나온 사람들이다. 그러니까 7천 년 전에 바이칼이 침하하면서 기후풍토가 고장을 일으키자 앙가라강에 뗏목을 띄우고 살 곳을 찾아 나선 사람들의 후예가 그들이라는 이야기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가장 영민하고 선택받은 웅족은 흑룡강을 건너고도 흥안령에 머무르지 않고 곧장 대륙의 중심부에 있는 섬서성의 태백산으로 짓쳐들어 가서 제단을 챙겨 세우고 나라를 세우니 그 곳이 신시(神市)요 그 나라가 밝달나라 -倍達國- 이다. 그것을 증명하는 단서가 아직도 태백산 정상에 있는 환웅천왕의 사당이요 그 환웅천왕들이 제후로 봉한 삼황오제(三皇五帝)들의 능묘(陵墓)와 사당이 오늘도 여전히 대륙의 복판을 타누르고 있다. 서토인들은 삼황오제를 늘 자기들 문명의 비조(鼻祖)로 선전하지만 그러나 그 주장들이 사개가 전혀 맞지 않은 것은 그 어른들이 바로 우리 조상이요 그들의 조상이 아닌 탓으로다. 조선을 세운 단군왕검은 제18대 커불단(居弗檀)환웅천왕의 아드님이다. 사실대로 하면 그 어른이 제 19대 환웅천왕이라야 옳다. 환웅천왕들의 법통을 고스란히 잇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런데 굳이 왜 새 나라를 세우고 조선─처음 샌 나라─이라는 이름을 붙이는가. 고립어를 쓰는 저 원주민들의 고질 병통인 모계사회의 습관과 인습을 말끔히 없애고 명실공히 부계의 나라를 세웠기 때문이다. 제 5세 태우의(太虞儀)환웅천왕의 열 두 번 째 아드님인 태호복희씨가 모계사회인 여와씨의 여(黎)나라에 진(陳)이라는 국명으로 봉토 받고 나서 천 년 만에 이루어내는 장한 쾌거였기 때문이다. 그 복희씨 이후 삼황오제가 모두 부계의 법속을 가르치기 위해 애쓰는데, 삼황오제 외에도 대정씨 백황씨 중앙씨 역륙씨 여연씨 혁서씨 존노씨 혼돈씨 호영씨 주양씨 갈천씨 음양씨 무회씨.... 등의 현자들이 함께 애쓰고 수고했으리라고 하는 그런 저간의 소식들이 이 책 안에서 증명되고 있다. 그런데 어쩌다가 이 반도에 갇혀서 지지리도 못난 오늘에 닿았는가. 김춘추가 머저리 외교를 하면서 조선의 국토를 당나라에 거의 내어준 삼국통일을 만들더니, 김부식의 삼국사기가 나오고, 이병도의 식민사학이 나오고.... 드디어 허리 잘린 국토에 괴뢰정권이 둘로 나뉘어서, 한 켠의 인민은 배고픈 짐승으로 죽고, 또 한 쪽은 친일파 친미파들이 기득권을 챙기는, 그래서 나머지 국민은 허섭스레기로 버려지는 오늘을 만들었는가. 이 국토는 분명 단군의 국토인데 왜 국민이 설 자리를 잃어 버렸는가. 겨울잠을 자는 개구리는 피가 차갑기 때문에 언 땅에 웅크리고도 얼어 죽지 않는다. 그 개구리를 찬물이 들어있는 냄비에 넣고 모락모락 느린 속도로 불을 지피면, 물이 더워져서 김이 날 지경이 되어도 여전히 헤엄을 친다는 것이다. 처음부터 김이 나는 물에 넣었다면 즉시로 죽겠지만 개구리는 냉혈이기 때문에 찬물인 줄을 몰랐고, 물의 온도가 변하는 대로 적응을 한 결과가, 제가 죽을 환경을 당해서도 여전히 체감을 못한다는 이야기다. 제 주권과 명분을 송두리째 협잡 당하고, 가지가지 수모와, ‘별난 가난’의 벼랑으로 내몰린 절대다수의 국민들이 득실대는 대한민국은, 알아 갈 수록 ‘개구리 냄비’라는 혐의가 짙다. 이승만이 반민특위를 해체하고 친일파를 들어 쓴 결과는 박정희의 공화국이 가능할 수 있었고, 마침내 이명박의 세상이 되는 데에 이르렀지만, 이토록 국가가 망가져서 도저히 국민이 살 수가 없는 환경인데도 근본적인 원인을 규명해보자는 소리는, 이제 어느 구석에서도 들리지 않는다. 오히려 박정희와 이승만을 내놓고 찬양하고 그리워하는 수구세력들의 세상이 되어가는 것은 왜인가. 그것은 조·중·동으로 일컫는 거대 언론의 작태가 빚어낸 치욕스런 결과물이다.
한 국가의 언론은 사람 몸의 피에 비교될 수 있다. 피가 맑으면 무엇을 먹어도 건강하지만, 피가 오염이 되고 나면 천하에 없는 영양식으로 장복을 한대도 온갖 병이 유발되는 법이다. 그 논리의 잣대로 잰다면 이 나라의 모든 병통은 조·중·동이라는 수구언론에다 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다. 천연덕스런 종교의 거짓 말, 전혀 가망이 안 보이는 정치판의 비리, 수도 없이 분칠을 하고 얼굴을 바꾸지만 ‘역시나’로 되풀이 되는 사법의 협잡, 아예 염치를 모르는 재벌의 이기주의, 민족역사와 윤리를 가르치지 않는 교육의 타성 등은, 옳게 선 언론만 있으면 애초에 싹수가 자랄 수 없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는 운수 사납게도 반민족적인 데다, 반역사적이고, 반언론적인 조·중·동한테 코를 꿰인 것이다. 권력을 감시하고 국민에게 알 권리를 제공해야 할 그들은, 제 언론의 본분을 져버리고, 오히려 돈과 권력의 시녀가 되려고 작정을 하고 나선 꼴이다. 프랑스는 겨우 5년 동안 나치의 억압을 치렀지만, 광복이 되고 나서 국가가 합법으로 처단한 부역자가 2만이 넘었다. 그 5년 동안 레지스탕스들이 비공식으로 살해한 숫자도 거의 그 수준이었다는 말이 있다. 비겁자들에게 쓴 맛을 안기고 난 당시의 드골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또다시 식민지 시절이 올 수도 있다. 그러나 프랑스에 두 번 다시 배신자는 없을 것이다.’ 한 때 비열한 짓거리를 한 죄를 그만큼 철저하고 혹독하게 다스렸던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일제 36년을 지나왔는데도, 민족의 반역자를 한 개도 처형시킨 일이 없다. 오히려 그들 대부분이 무슨 공로가 있는 것처럼 국가적인 명분으로 포장 되었고, 뒈져서 송장이 되면 당연한 듯이 국립묘지로 향했다. 거짓이 진실을 디디고 서서 그것이 정의인 것처럼 목청을 돋우는 나라. 이것이 대한민국의 실상이다.
이런 상황을 견디면서도 율려(律呂)의 조(調)가 바뀌는 과도기 현상이라고, 옛 조선의 구변진단도(九變震檀圖)가 마지막으로 맞아 떨어지는 중이어서 그렇다고, 은사(隱士) 한밝선생은 말씀한다. 독일에 축구 유학을 갔다가 은사(恩師) 한스 렝크의 권고로 단군에 입문했다는 한밝은, 선천(先天)의 운세가 다하고 바야흐로 후천개벽 운이 다가서는 중이라고, 증산(甑山) 상제(上帝)가 천지공사를 그렇게 매듭지었기 때문이라고 담담하게 일축해 버린다. 그러나 사람의 숨결로 만들어 가는 역사에 사람의 생각과 의지와 분노가 없이 어떻게 하늘의 혁명인들 저절로 가능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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