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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신과 한국사상
지은이 : 지승
가  격 :   13,000원
ISBN : 89-7193-154-X (03200)
초판발행일 : 2004년 6월
신라화랑도로부터 고려 불교, 조선 유교사회에 이르기까지
우리 정신사의 중심을 관통하는 三神思想!
기독교의 유입과 물질 만능의 풍조 속에서 민족 사상이 지향해야 할 길을 묻는다.
 
           
이상한 일이다. 새벽 예불을 끝내고 책상에 않은 것이 언제인데 아직 한 줄도 쓰지 못하고 있다. 해 뜰 무렵에 소란스럽던 산새 소리도 이제 들리지 않는다. 이 잘난 글 조각에 머릿글 따위가 왜 이리 풀리지 않는가.

그러니까 스물 세 해 전, ‘삼신피’의 원고가 조선 편을 지나 해방 이후 살림을 이야기할 단계였다. 그 때 내 손을 붙들면서 만류하는 시인이 있었다. 십오년 전에 타계한 박정만 형이었다. 그 무렵 별스럽지도 않은 필화사건에 연루되어 사흘 밤 사흘 낮을 개마냥 두들겨 맞은 경험이 있던 그는 나를 잃고 싶지 않다면서 아주 적극적이었다. 곁에 있던 이상열 시인도 열심히 거들었다.

때는 전두환의 시절이었고, 모든 것이 그들의 총칼 밑에서 굽죄어들고 있었으니, 잘못된 역사를 말하려는 내가 무모하게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럴 수가 없었다. 또 이제까지의 많은 이야기는 오늘이라는 현실을 드러내기 위한 준비작업에 지나지 않았는데, 정작 본론을 생략한다는 게 있을 수 없는 일 아닌가.

역사는 사람의 살림이다. 배고픈 채 짓밟히던 바닥 상것들이 민중이라는 이름으로 깨어나서, 제 투표에 의해 대표자를 뽑고, 노조를 결성하고, 위아래가 따로 없이 한물지는 오늘의 사회가 한 단계 올라선 것은 사실이다. 문민정부가 국민정부로 다시 참여정부로 한 걸음씩 진보하고도 있다. 한 사람 보스에 의한 독재시대, 군벌이 정치를 농단하던 시대도 멀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무엇인가로 여전히 불안하다. 더딘 걸음으로 진행되는 이 흐름도 역전시킬 가능성 또한 여전히 자라고 있는 탓에서다.

국회는 대의정치라는 미명 아래 자기 패거리들의 집단이익을 꾀하는 권모술수의 난장판이 돼가고, 지방자치 또한 몇몇 토호들의 세력 마당으로 판이 짜여간다. 도덕과 인애로 하나되는 화합이 아니라 분열과 혼란 속에서 각자가 제 이익에만 몰두하는 쪽으로 열심히 달린다. 이것이 우리가 바라던 세상은 분명 아니다.

해방 이후 신사조의 물결이 이 국토를 휩쓸면서 세력을 얻은 것은 기독교다. 따라서 그때까지의 기성 종교는 급격히 빛을 잃거나 그 물결에 매몰되는 불운을 만난다. 우주와 생명과 사람의 살림을 통짜배기로 인식해오던 동양의 관념들이, 일체 것을 세분화하고 쪼개어 나누면서 이분법으로 인식하는 서양사조에 밀리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다.

일찍이 천체를 관측하여 정확한 태음력을 만들었고, 그 책력 속에 24절기를 기록해서 계절의 움직임을 동시적으로 정밀하게 파악했던 동양의 위대한 과학은 설익은 서양과학에 의해 미신으로 치부되면서 사회적 감각들이 급격하게 변화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학교의 교과서가 서양의 전통을 과대 선전하면서 물질만능을 부추긴 것이 큰 원인이었을 것이다.

그 때로부터 사회 각층의 혈관과 신경선 노릇을 하게 된 것이 언론이다. 그런데 역사의 복을 타지 못한 우리는 그 대목에서도 불행의 씨를 배태해야 했다. 일제시대에 창간되어 민족정기를 말살하는 데에 앞장서왔던 「조선일보」 따위들이 민족지를 자처하면서 못된 독재정권의 시녀노릇으로 발을 벗은 것이다.

필요 이상의 교육열 때문에 학력 인플레를 만들어버린 한국의 현실에서 젊은 지성들이 제 노릇을 못하고 보이지 않는 손에 조종당하는 꼭두각시가 되는 것도 바로 잘못된 언론의 힘이다.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우리네 본래의 도덕이 무너지고 서양인들의 법에 의해서 국가가 경영되는 이 현실을 개탄할 것이다.

삼팔선이라는 철조망은 국토의 허리에만 걸린 것이 아니라 민족의 가슴 가슴에 걸린 형제 사이의 부끄러움의 증표요 지성의 이마에 찍힌 형벌의 인두자국이다. 그러나 이 현실을 이대로 가져가자는 세력은 도처에 건재한다. 이른바 보수세력이다. 광주를 희생양으로 잡아서 그 피를 마시고 정권을 찬탈한 군부 쿠데타에 열심히 충성심을 보이고 국토의 자존을 욕되게 하거나 민족의 역사를 더럽힌 자들을 한사코 옹호하면서, 거기서 떨어지는 제 집단의 배지를 불려온 보수 언론을 나는 그래서 미워한다.

박정희 시절의 민청학련 사건에 관계가 된 덕분에 27년 만에 대학을 졸업했다는 김 학민 사장이 이 책을 맡은 것이 그저 우연만은 아닐 것이다. 길섶의 아주 작은 풀꽃조차도 우주의 리듬을 타고 피고 지는 것이라면 이 책 또한 어떤 섭리에 의해서 독자를 찾아가는 것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