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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신과 동양사상
지은이 : 지승
가  격 :   12,000원
ISBN : 89-7193-153-1
초판발행일 : 2004년 5월
사회 통제원리로서의 유교이념, 깨달음을 통한 인간구원의 불교정신!
이들을 극복·습합하여 이땅의 민중들의 삶과 생각을 이끌어온 三神思想의 뿌리를 찾는다.
 
           
새벽 도량석을 하다 문득 서산 머리에 비낀 그믐달을 본다. 실낱같은 고운 선이 금빛으로 아쉽다. 머지않아 동이 트고 붉은 해가 거침없이 솟을 것이다. 이 국토 민초의 역사도 이런 새벽의 날은 필경 다가서리라. 터앝에 심은 채소가 하루가 다르게 자란다. 처음에 아구를 트고 나온 이파리는 콩쪽만한 것이 너무 시쁘장스럽더니 며칠 지나는 사이에 콩잎같은 속잎이 나고 다시 또 손바닥잎이 나고 하는 사이에 이제는 제법 채소 꼴이 잡혀간다. 대견한 일이다.

서글픈 일이다. 내가 틔운 ‘삼신피’의 싹은 스무 해가 넘건만 아직 콩쪽 떡잎 그대로다. 채소는 땅의 진기를 먹고 자란다. 그래서 거름으로 땅의 기운을 북돋운다. 허나 사상의 싹은 비판을 통해서만 자라는 법이다. 함부로 두들겨대는 비판이 무자비한성 싶어도 역사를 움직여온 위대한 사상일수록 혹독한 비판을 통한 검증없이 된 것은 없다.

석가, 예수, 공자같은 인물들의 사상이 우선 그렇다. 비판을 용납하지 않은 히틀러가 오만과 독선에 빠져서 역사 속의 실수로 남은 것이 좋은 예일 것이다. 그것은 마치 성의있게 올려 미는 새싹한테 제 자리를 양보하고 저는 가뭇없이 사라지는 첫 싹들의 운명이다.

신변잡기(身邊雜記) 수준을 넘지 못하는 못난 활자들이 베스트셀러로 판을 치는 세태(世態)에서 나는 혼자서 무던히 야속하였다.

서기 일구구이년 9월부터 일구구륙년 5월까지의 시간을 나는 북만주의 거친 풍토에서 오직 상고사를 복원하자는 일념으로 헤매었다. 겉으로는 그곳에 흩어져 사는 소수민족들의 풍속과 습관을 조사한다는 것이었지만, 속생각은 우리의 상고 역사가 남긴 비늘조각을 줍느라 겨를이 없었다. 덕분에 흥안령 산맥과 흑룡강 일원을 고루 누벼 밟았고 생명을 담보하는 위험도 여러 번 감내해야 했다.

그것이 아니어도 지난 스물 세 해 동안 나는 상고사 복원이라는 화두 외에는 달리 생각해본 것이 없었다. 이렇게 한 우물을 파왔다면 새로운 자료나 의견이 많을 것이지만 ‘삼신피’를 거의 고치지 않고 그냥 내보낸다. 지금 다시 읽어도 고치고 싶은 부분은 없다. 마음에 걸리는 데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을 손질한다면 전체를 다시 써야 했을 것이다.

솔직히 토로한다면 나는 과거의 원고에 매달리고 싶지가 않다. 그럴 시간이 있다면 4년 동안 모아온 자료를 정리하는 것이 옳다는 쪽이다. 또 적상산 호국토굴에서 그 원고를 쓰면서 ‘이것이 무슨 역사냐!’고 통곡으로 울었던, 신라 통일 이후의 잘못된 매듭들을 오늘의 젊은이들에게 고스란히 들려주고도 싶어서다.

반복되는 실수와 수없는 절망을 건너와서 생각할 적에 비로소 확실하게 잡혀지는 것이 있다. 역사는 사람의 살림이지 신이나 부처에게 빌어서 구원되는 살림살이가 아니라는 점이 다. 나는 이 글을 읽는 젊은이에게 말하고 싶은 것이 있다.

그대가 누구에게 어떤 역사를 배웠든 문자의 시비를 훌훌 털어 버리고 자신의 핏대 속을 흐르는 피의 고동에 가만히 기울이기 바란다. 그러면 열강의 틈서리에 끼인 이 새우등같은 반도에서 용하게 살아남은 불사신의 혼을 들을 것이다. 거기서 그대가 하늘에 벌려 선 조상의 음성을 듣고 진솔하게 누구라는 것을 깨닫는다면, 그대의 웅혼한 기상이 역사에 어떻게 참여할 것인지 알게 될 것이다. 나는 그대의 혼을 두들겨 깨우는 사람일 뿐이다.

한갓 지나온 과거를 돌아다보자는 것이 역사는 아니다. 무식한 용기로 미래를 계획하고 설계하려는 것은 더욱 아니다. 사람의 목구멍 속을 오르내리는 가는 숨줄만이 역사의 영원한 테마일 것이다.